[인문학 칼럼 1]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출퇴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역 안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지나치다가 어깨를 부딪쳤다. 서로가 부주의해서 벌어진 상황이지만, 두 사람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상대에게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언성을 높인다. 두 사람 모두 알고있다. 상대편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라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올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때, 신년에는 못다 이룬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노라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메모한다. 이번만큼은 작심삼일이 아니라 정말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초반에 타올랐던 열정과 투지는 빛바랜 지 오래고, 전과 다를 바 없는 익숙했던 내 모습만 남아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운동을 해야 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공부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는데도 못할 뿐이다.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고 도덕 시간에 다 배웠고, 자기계발서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을 얻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해버리고 관성의 법칙이 의지력을 꺾어버린다. 이처럼 사람은 몰라서 바른 실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바른 언행을 실천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무의식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Until you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it will direct your life and you will call it fate.(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무의식이란 자기도 발생하는 마음속의 감정과 생각과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다양한 외부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성장하게 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이전까지 축적되어온 생각, 지식, 감정, 기억 등이 하나의 고정된 틀을 형성한다. 사람은 그때부터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 속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쌓아온 습관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즉, 무의식이 자신을 지배하는 상태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때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더라도 이미 형성되어버린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변화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그것이 곧 나의 ‘운명’이 된다.

이러한 무의식을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무의식을 바꾸는 데 편법 같은 건 없다. 우리는 매일매일 노력해야 한다. 매일매일 지혜와 깨달음의 글을 읽으며 무의식의 관성을 깨야 한다. 내 의식은 알고 있지만, 내 무의식은 모르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아무리 바쁘고 게으른 사람이라도 ‘하루에 책 1장 읽기’, ‘하루 1분간만 운동하기’, ‘짜증 한 번만 참기’ 정도는 누구나가 조금만 힘들이면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설정한 목표가 무의식 속에 완전히 녹아들 때까지는 목표치를 올리지 않는 것이다. 자칫 부담되어 무의식이 거부감을 느끼게 되면, 아예 조금도 실천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은 아주 천천히,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것이, 운동하는 것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워지는 때가 온다. 바로, 기존의 무의식이 자리를 내어주고, 새로운 무의식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그때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며, 내 운명 역시도 바뀌게 된다. 

무엇이든 좋다. 변화하고 싶다면 무의식을 두드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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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철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