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의 상상도. 출처: NASA
1977년 9월 5일, 보이저 1호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 보이저 1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외태양계 연구를 위해 제작된 탐사선으로, 1989년 본래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현재는 성간 공간으로 진입해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시 보이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80년 NASA에 한 가지 제안했다. 미래에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때 망원 카메라의 방향을 태양계 안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담아보자는 것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렇게 하면 지구라는 행성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유인즉 보이저 1호가 방향을 돌리다가 렌즈가 강력한 태양 빛에 노출될 경우 카메라가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과학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단지 사람들에게 철학적 깨달음을 주고자 계획에도 없던 일을 진행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측면에서 봤을 때 매우 큰 위험이었다.
그렇게 칼 세이건의 제안은 무산되는 듯했으나, 1989년 전 우주 비행사였던 리처드 트룰 리가 NASA의 신임 국장이 되면서 칼 세이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보이저 1호가 지구의 사진을 찍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34분 뒤 보이저 1호는 카메라 작동을 중단했다. 먼 우주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 동력을 절감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얼마 후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보낸 사진을 받았고, 60억km 밖에서 찍힌 지구는 먼지 한 톨도 채 안 되는 크기의 희미한 점에 불과했다. 칼 세이건은 이를 보고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동일한 이름의 자신의 저서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진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30주년 기념으로 최신 기술을 활용해 보정한 사진. 중앙 우측 부분에 보이는 작게 빛나는 점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구다. 출처: NASA/JPL-Caltech
“바로 여기입니다. 여기가 우리들의 집입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 점 위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다 갔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우리가 확신하는 수천 개의 종교와 이념과 경제체제,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모든 왕과 농부, 모든 사랑에 빠진 연인,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스승과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이 태양 빛 속에 떠다니는 저 작은 먼지 위에서 살다 떠났습니다.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공연장 속의 너무나 작은 무대입니다. 그 모든 장군과 황제들이 아주 잠시 동안 저 점의 작은 부분을 지배하기 위해 흘렸던 수많은 피의 강들을 생각해보세요.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잔혹함을 생각해보세요.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얼마나 죽이려고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우리의 허세, 우리의 자만심, 우리가 세상에서 특권을 가진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의 지구는 사방을 뒤덮은 우주의 암흑 속에 외롭게 떠 있는 하나의 알갱이에 불과합니다. 이 광활함 속에 잊힌 우리를 구해줄 다른 이들이 어딘가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만이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종이 이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좋든 싫든 현재로써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람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되는 경험이라고들 합니다. 멀리서 찍힌 이 사진만큼 인간이 가진 어리석은 자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좀 더 따뜻하게 대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라는 책임 말이죠.”
1990년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원본). 출처: NASA/JPL-Caltech
우리는 지구라는 너무도 작은 불빛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실망하며 그렇게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시공간 속에서 지금의 현실은 아주 잠깐의 순간일 뿐이며, 그 무엇도 영원하다고 할 수 없는, 잠시 후면 모두 끝날 꿈이 아닐까?
가정문제로, 대인관계로, 직장문제로, 그 외 인생을 살아가며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로 괴롭고 힘들 때, 아주 잠깐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활한 우주로 내 마음을 띄워 보내 보자. 우주를 마주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질 것이며,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험담하고 공격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무의미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이 드넓은 우주 속에서, 먼지만큼도 안 되는 창백한 푸른 점에서 태어나, 지금 이 현실의 시간 속에서 서로 만나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주를 마음에 품으며 다시 한 번 인연의 소중함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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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철우 기자 다른기사보기